CRAFTSMANSHIP

미키하우스의 제작 정신

05

제5회 테마

기술과 함께 일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며 걸어온 25년.

미키하우스가 만드는 아동복 디자인에는 생동감 넘치는 「미키하우스다움」 을 표현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존재.
그것이 바로 「프린트」 와 「자수」 이다.
그중 「프린트」 의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하면, 약 40년간 시대를 초월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미키하우스의 백 로고 맨투맨 이다.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색상과 미키하우스 로고가 들어간 다양한 아이템이 출시되었는데 등에 커다랗게 프린트된 「미키하우스 로고」는 미키하우스의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이 로고 프린트를 비롯해 미키하우스 상품의 세계관을 풍성하게 표현하는 「자수와 프린트」 의 2차 가공 기술과 그것을 지원하는 현장을 30년에 걸쳐 지휘해 온 나라현 고조시에 있는 「다나카자수 주식회사」 의 오카무라 요시코 씨 (2021년 퇴임, 전 전무이사) 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조금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이렇게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있었네요.」

우선은 프린트 가공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다나카 자수는 당시 미키하우스의 거래처로서 가방 종류를 제조하는 주식회사 핫라인 으로부터 2차가공 업무를 하던 하청 회사였다.「기회가 되면 미키하우스와 같은 브랜드와 직접 일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핫라인 측에서 『미키하우스에 한 번 제안을 하면 어때요? 』라며 등을 밀어 주셨습니다.」
또, 미키하우스의 거래처가 모이는 신년회에 참석했을 때 미키하우스 생산관리 담당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이런 것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해도 좀처럼 원하는 만큼의 기준에 미치지 않아 고민입니다.」
거기서 「우리 회사라면 어떻게든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막상 제안을 하면 자수는 「다른 업체로 이미 충분합니다. 」라는 답변뿐이었다. 현실은 냉엄했다. 그럼에도 오카무라 씨는 「언젠가 미키하우스와 함께」 라는 바람을 가슴에 품고 1년 동안 미키하우스 본사로 꾸준히 다녔고 마침내 일거리를 의뢰받는 날이 찾아 온 것이다. 「정성을 다해, 신속하게 대응한다」 는 점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미키하우스 담당자와 우리 쪽 담당자의 호흡이 잘 맞았던 것도 컸습니다. 약 10년간 아주 치밀한 요구사항까지도 만족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술력은 물론이거니와 일을 진행해 가는 과정에서 고객인 미키하우스의 디자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수」 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안을 기획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담당자들 간의 호흡이 잘 맞고 이미지도 서로 공유되어야만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고 더 나아가 높은 수준의 제안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오카무라 씨 자신이 미키하우스를 직접 찾아가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온 점도 큰 요인일 것이다.

이렇게 미키하우스와의 거래가 10년을 넘어섰을 무렵, 「덕분에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미키하우스와의 관계도 탄탄한 기반이 다져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2차 가공 업계에서는 「자수」와 「프린트」는 각각 다른 회사에서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미키하우스의 디자인은 다채로운 프린트와 아플리케 그리고 자수가 함께 디자인되는 경우가 많았다.
「먼저 다른 회사에서 프린트한 몸판 부분의 재단물이 납품되면 거기에 자수를 놓아 마감하는 작업이었기에 프린트는 프린트를 잘하는 업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미키하우스 담당자로부터 「프린트도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라는 제안을 받아서, 제일 먼저 기계식 오토 스크린 프린트로 파자마 프린트 작업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미키하우스 입장에서 보면은 자수와 프린트 공정을 한 곳에서 끝내는 것이 작업 속도도 빨라지고 품질 관리 면에서도 용이하다. 「미키하우스의 담당자가 직접 공장까지 오셔서 확인해 주셨는데 저로서는 프린트 작업에서 실패하면 어떡하지.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물거품이 되어 버릴텐데… 라는 불안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부 OK, 합격이었습니다. 이 품질로 진행해 주십시오. 』 라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수작업 프린트 공정

오카무라 씨가 내린 결론은 미키하우스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기계식 자동 프린트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한 장 한 장 손으로 「수작업 프린트」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 후 장인들과 함께 프린트 기술을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다고 오카무라 씨는 말한다.
「자수도 어렵지만 프린트 역시 마찬가지로 깊이가 있고 정말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

미키하우스 제품과 같이 디자인이 복잡하고 정교하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프린트는 바탕이 되는 원단의 색상과 가공방식의 차이에 따라 동일한 프린트용 배합제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이 백 로고 맨투맨 프린트를 살펴보면 빨간색과 네이비색 모두에 「흰색」 프린트가 입혀져 있다. 그러나 빨간색 원단에 입히는 「흰색」 프린트와 네이비색 원단에 입히는 「흰색」은 프린트제의 성분이 동일하지 않다. 프린트에는 「아름답고 정확하게 프린트를 하는」 기술 이전에 원하는 색감과 느낌이 나오도록 원단에 맞는 「프린트제를 배합하는」 경험치와 노하우 그리고 그 프린트가 미키하우스 제품에 요구되는 내구성을 갖추어야 한다. 원단의 성질, 색상을 분석하여 각각의 원단에 맞는 프린트제를 그때그때 조합해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수작업 프린트 공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제품에 많은 색상의 프린트가 필요할 경우, 인쇄작업을 여러 차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겉보기에는 한 가지 색상의 프린트로 보일지라도 원단의 색상이나 표현하고 싶은 분위기에 따라서는 몇 번이고 수작업으로 인쇄를 반복해야 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한 가지 색상으로 여러 차례 겹쳐 프린트를 하는 경우, 어긋나지 않게 함은 물론이고 원하는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인쇄할 때 힘 조절 등 미세한 조정을 하면서 그야말로 「장인의 경지」 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한 점의 제품만이 아니라 수작업으로 하는 인쇄를 수천 장의 제품에 똑같은 퀄리티가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어려움과 기술의 장벽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50주년 기념으로 출시된 이 티셔츠.

완성되기까지 자수 공정을 2~3회, 프린트는 무려 80회나 인쇄를 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랑스럽고 신나는 디자인의 티셔츠」가 한 점 완성되기까지는 이 정도의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이다.

프린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카무라 씨는 그리운 듯 말한다.
35년쯤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회사에 매일 미키하우스 로고 프린트 맨투맨을 입고 오는 검품 담당 직원이 있었습니다. 로고에 금이 가 있길래 어떻게 된 거야? 라고 물어봤더니 마음에 들어 매일 입고 세탁을 했더니 원단은 멀쩡한데 프린트 부분만 이렇게 되어 버렸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프린트 이야기를 하면 그 직원이 입고 있던 맨투맨이 떠오릅니다. 당시와 비교하면 프린트제도 많이 발전해서 세탁을 해도 갈라지는 일은 없습니다만, 그때는 우리 회사가 미키하우스의 로고 맨투맨을 프린트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어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장인들과 함께 미키하우스 제품에 걸맞는 기술력을 목표로 걸어온 오카무라 씨였지만 미키하우스와의 거래를 시작할 무렵부터 다짐했던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미키하우스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걸맞은 회사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나카자수에는 다양한 부서가 있고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업무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보람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를 고민해 왔습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어떤 포지션의 직원이라도 입사 후 최저 6개월간은 전원 자수 업무를 경험하게 하고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다.」
적성이라는 것도 있지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술을 점점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저희는 자수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생산을 담당하는 현장 직원들은 공장 근로자가 아니라 기술자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먼저 기술을 익히게 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모두가 일하는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플리케를 붙이는 등의 공정도 영업 사원과 디자인 담당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카시무라 씨가 실시한 이 시책은 더욱더 좋은 결과를 창출했다.

계절에 따라서는 주문이 늘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회사 전체가 생산 체제로 해야 할 때, 육아 중인 시간제 근무자들은 잔업이 어렵다. 그럴 때 저녁 시간부터는 영업 사원이나 디자인 담당자도 습득한 기술을 활용하여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업무에는 전문 장인만이 할 수 있는 일과 모두가 나누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한 점 한 점 재봉틀로 직접 붙이는 리본
피부에 닿는 부분을 배려한 자수 뒷면 덧감 가공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본업 이외의 업무를 했을 때 과연 어떤 평가로 이어진 걸까?
「지원 업무에 투입되면 그만큼 자신의 업무시간이 줄어들게 되는데, 본인 스스로 지원 업무를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원 업무로 참여한 작업마다 한 장당 수당을 책정했습니다. 또한 매일 업무 성과를 일지에 기록하는 것을 습관화했습니다. 일반적인 업무와는 별도로 지원 업무에도 보상을 정하고 그것을 성과급으로 월급에 반영되도록 했습니다.」
역시 구체적인 성과가 보이니까 「지원」 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으로 자진하여 참여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의 개혁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오카무라 씨는 일하기 좋은 현장, 일하는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다나카자수는 많은 사람이 도와줘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재봉틀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의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임신, 출산, 육아라는 인생의 단계를 밟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업무를 분담하거나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여 대응하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들을 정신적인 면에서의 지원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오카무라 씨 (중앙)와 다나카자수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여성 직원들

마지막으로 오카무라 씨에게 물었다.
미키하우스와 함께 해온 25년이란, 오카무라 씨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미키하우스와의 25년간은 감사함뿐입니다. 미키하우스는 2차가공 업체인 저희를 한 그룹의 일원같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희 회사의 바람직한 모습에 눈을 돌릴 수 있었고 개선해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안심하고 다나카자수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저희들만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반드시 상의를 해왔습니다.
상담을 하면 미키하우스에서 적절한 조언을 해 주시고 함께 고민하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이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세심하게 지시를 해 주신 덕분에 신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활짝 미소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오빠가 도와 달라라고 해서 입사하여 40년 일했습니다. 이제 퇴임했지만 지금도 더 좋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시나 신경이 쓰여서 종종 들여다 보러 가곤 합니다.」
오카무라 씨의 강한 신념과 세심한 배려, 확실한 기술력 그리고 직원들의 행복을 생각한 개혁・・・그 모든 것이 미키하우스의 맨투맨과 티셔츠에 새겨지는 프린트와 자수 하나하나에 살아 숨 쉬는 따뜻한 메시지가 되어 있다.

깊은 역사와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나라현 고조 지역에서 탄생한 프린트와 자수는 미키하우스 제품에 생명을 불어넣고 전 세계의 어린이들의 미소를 더 선명하게 물들여 갈 것이다.

공장에서 바라본 나라의 풍요로운 산들